기생충 vs 설국열차, 계급의 수직선과 수평선

봉준호 감독은 계급 문제를 추상적인 설명보다 구체적인 공간으로 보여주는 데 능숙합니다. 2013년 개봉한 〈설국열차〉는 약 935만 명, 2019년 개봉한 〈기생충〉은 약 1,031만 명의 국내 관객을 모았습니다. 두 작품 모두 대중적인 장르 안에 빈부 격차를 담았지만, 〈설국열차〉가 세계 전체를 열차 한 대로 압축했다면 〈기생충〉은 서울의 익숙한 주택과 골목 안에서 계급을 발견합니다. 〈기생충〉은 한국 영화 최초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이후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국제장편영화상·각본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의 국제적 위치를 크게 바꾼 작품이기도 합니다.

두 영화에서 계급을 구분하는 방향은 다릅니다. 〈기생충〉의 가난한 사람들은 반지하와 지하실에 살고, 부자는 언덕 위 저택에 삽니다. 계급은 위와 아래를 가르는 수직선으로 표현됩니다. 반면 〈설국열차〉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꼬리칸, 지배자는 맨 앞의 엔진칸에 있습니다. 계급은 뒤에서 앞으로 이어지는 수평선 위에 놓입니다. 그러나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든 아래에서 위로, 뒤에서 앞으로 올라가는 일은 좀처럼 허락되지 않습니다.

이 리뷰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작성되었고,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본 정보 비교

항목〈기생충〉〈설국열차〉
제목기생충설국열차
원제ParasiteSnowpiercer
감독봉준호봉준호
출연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크리스 에반스, 송강호,
틸다 스윈튼, 고아성
개봉2019년 5월 30일2013년 8월 1일
장르드라마SF
상영시간131분125분
관람등급15세 이상 관람가15세 이상 관람가
국내 관객 수약 1,031만 명약 935만 명

남의 집에 들어가는 가족과 앞 칸으로 향하는 사람들

〈기생충〉은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 가족의 장남 기우(최우식)가 부유한 박 사장 집의 과외 교사로 들어가면서 시작됩니다. 기우는 자신을 대학생으로 꾸미고 박 사장의 아내 연교(조여정)의 신뢰를 얻습니다. 이어 동생 기정(박소담)을 미술 교사로 소개하고, 기존 운전기사와 가사도우미를 내보낸 뒤 부모까지 박 사장 집에 취업시킵니다.

가족은 서로 모르는 사람인 척 부잣집 안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박 사장 가족이 캠핑을 떠난 밤, 이전 가사도우미 문광이 돌아오면서 저택의 비밀이 드러납니다. 집 아래에는 건축주가 만든 지하 공간이 있고, 그곳에는 문광의 남편 근세가 오랫동안 숨어 살고 있었습니다. 위층의 부자 가족뿐 아니라 지하에 사는 또 다른 빈곤층까지 나타나면서, 기택 가족이 잠시 차지한 자리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드러납니다. 공식 소개에서도 이야기는 기우가 박 사장 집의 과외 자리를 얻으며 두 가족이 만나게 되는 과정으로 설명됩니다.

〈설국열차〉는 기상이변으로 지구가 얼어붙은 뒤, 살아남은 인류가 거대한 열차 안에서 생활하는 세계를 보여줍니다. 열차의 꼬리칸에는 굶주림과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몰려 있고, 앞 칸에는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승객들이 있습니다.

꼬리칸의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지도자 길리엄(존 허트)과 함께 반란을 준비합니다. 커티스 일행은 보안 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를 감옥에서 꺼내고, 닫힌 문을 하나씩 열며 엔진칸을 향해 전진합니다. 남궁민수의 딸 요나(고아성)도 이 여정에 합류합니다. 이들의 목표는 열차를 지배하는 윌포드에게 도달해 엔진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 칸으로 갈수록 열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불평등을 유지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하나의 사회라는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계단을 오를수록 선명해지는 〈기생충〉의 계급

〈기생충〉에서 계급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는 계단입니다. 기택 가족의 반지하 집에서는 창문을 통해 길거리 사람의 다리와 취객의 모습이 보입니다. 박 사장의 저택으로 가려면 높은 언덕과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저택 안에서도 거실과 정원은 넓고 환하지만, 비밀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은 어둡고 좁습니다.

이러한 공간 배치는 관객이 인물들의 경제적 위치를 눈으로 확인하게 만듭니다. 기우가 박 사장 집으로 들어가는 일은 단순한 취업이 아니라 위쪽 세계로 올라가는 움직임입니다. 기택 가족은 능숙한 연기와 계획으로 그 집에 자리를 잡지만, 실제로 소유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박 사장 가족이 돌아오면 테이블 아래에 숨거나 계단을 내려가야 합니다. 올라갈 때는 각자의 능력이 필요하지만 내려갈 때는 단 한 번의 전화면 충분합니다.

폭우가 내리는 밤은 수직 구조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박 사장 가족에게 비는 캠핑을 망친 불편한 날씨에 불과합니다. 다음 날에는 공기가 맑아졌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그러나 기택 가족은 저택에서 빠져나온 뒤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 물에 잠긴 반지하 집에 도착합니다. 같은 비가 위쪽 사람에게는 맑은 날씨를 만들고, 아래쪽 사람에게는 집과 재산을 잃게 합니다.

〈기생충〉의 장점은 계급 문제를 설명하는 대사를 길게 늘어놓지 않고 집의 높이, 창문의 위치, 냄새와 이동 경로로 전달한다는 데 있습니다. 특히 냄새는 공간의 차이가 사람의 몸에 남긴 흔적입니다. 기택 가족이 옷을 갈아입고 역할을 바꿔도 반지하의 냄새까지 지울 수는 없습니다. 박 사장이 무심코 그 냄새에 선을 긋는 순간, 기택은 자신이 결코 같은 높이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다만 후반부 생일 파티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이전까지 정교하게 쌓아 올린 풍자에 비해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러 갈등이 짧은 시간 안에 폭발하기 때문에 인물의 감정보다 사건의 충격이 먼저 다가오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폭발은 앞선 공간과 냄새의 묘사를 통해 충분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발적인 참극처럼 보이지만, 위아래로 나뉜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몰렸을 때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충돌에 가깝습니다.

문을 열수록 넓어지는 〈설국열차〉의 세계

〈설국열차〉에서 계급은 열차의 앞과 뒤로 구분됩니다. 꼬리칸 사람들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닫힌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가 엔진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전개도 횡스크롤 게임처럼 한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인물들이 문을 하나 통과할 때마다 새로운 계급과 시설이 등장합니다.

꼬리칸에서는 승객들이 단백질 블록으로 끼니를 해결하지만, 앞 칸에는 수족관과 초밥, 교실, 미용실, 클럽이 있습니다. 열차의 앞부분은 단순히 더 많은 물건을 가진 공간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여유와 쾌락이 모여 있는 세계입니다. 이 대비 덕분에 관객은 커티스 일행이 얼마나 긴 거리를 이동했는지보다, 계급 사이에 얼마나 많은 생활 방식이 겹겹이 놓여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액션 장면 역시 계급 구조와 연결됩니다. 커티스 일행은 문을 열 때마다 더 강한 저항을 만납니다. 특히 복면을 쓴 진압군과 도끼를 들고 맞서는 장면은 열차의 질서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폭력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앞 칸 사람들의 평화롭고 우아한 생활은 꼬리칸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통제와 희생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설국열차〉의 또 다른 장점은 혁명조차 체제의 일부일 수 있다는 의심을 던진다는 점입니다. 커티스는 자신이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믿지만, 엔진칸에 도착한 뒤 반란이 열차의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이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지배 체제는 저항을 막는 데 그치지 않고 저항의 규모와 결과까지 관리합니다.

반면 열차의 각 칸이 특정 계층과 기능을 상징하다 보니 일부 장면은 인물의 삶보다寓話적인 설정을 먼저 보여준다는 인상을 줍니다. 학교 칸과 클럽 칸처럼 시각적으로 강렬한 공간은 풍자의 의미가 선명하지만, 현실의 복잡한 계급 관계가 다소 단순한 구획으로 정리되기도 합니다. 커티스와 윌포드의 대화 역시 핵심 주제를 직접 설명하는 비중이 커서, 〈기생충〉의 생활감 있는 묘사보다 메시지가 노골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설국열차〉는 거대한 세계관과 장르적 속도를 이용해 계급 이동의 어려움을 몸으로 체감하게 합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가능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됩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도 기다리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기존 지배자의 자리입니다.

위로 올라가는 사람과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기생충〉과 〈설국열차〉는 모두 낮은 계급의 인물이 높은 계급의 공간에 도달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두 영화의 이동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기생충〉의 인물들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개인적으로 올라갑니다. 기우는 대학생 행세를 하고, 기정은 유명 미술 교사의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가족은 구조를 바꾸기보다 자신들이 위쪽 공간에 편입되기를 바랍니다. 그 과정에서 같은 처지의 운전기사와 가사도우미를 밀어냅니다. 수직선에서는 누군가 올라가기 위해 다른 누군가가 아래로 떨어지기 쉽습니다.

〈설국열차〉의 커티스 일행은 집단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들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지 않으며, 열차의 질서를 공개적으로 깨뜨립니다. 그러나 수평선 위의 혁명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반란군이 엔진을 차지하더라도 앞과 뒤로 나뉜 열차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새로운 지배자가 기존 체계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두 작품은 이동 방향만 다를 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으로 계급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위층에 들어가도 집의 주인이 될 수 없고, 엔진칸에 도착해도 열차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면 이동은 체제 안에서 자리를 바꾸는 일에 머뭅니다.

같은 선을 벗어나지 못하는 두 결말

〈기생충〉의 결말에서 기택은 박 사장을 살해한 뒤 저택의 비밀 지하실로 숨어듭니다. 그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부잣집에 들어왔지만, 결국 그 집에서 가장 낮은 공간의 사람이 됩니다. 반지하보다 더 아래에 있는 지하실은 기택의 추락을 완성합니다.

기우는 언젠가 돈을 벌어 저택을 산 뒤 아버지를 지하에서 꺼내겠다고 상상합니다. 화면 속에서는 기우가 집을 사고 기택이 계단을 올라오는 미래가 펼쳐지지만, 곧 카메라는 다시 반지하의 기우에게 돌아옵니다. 계획은 희망적이지만 그가 올라가야 할 수직 거리는 여전히 막막합니다. 영화는 계급 상승의 꿈을 보여준 다음, 출발점으로 돌아와 그 가능성을 냉정하게 바라봅니다.

〈설국열차〉의 커티스는 마침내 엔진칸에 도착하지만, 윌포드는 그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받으라고 제안합니다. 꼬리칸 출신의 혁명가가 열차의 지배자가 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커티스가 그 자리를 받아들인다면 수평선의 양 끝만 바뀔 뿐 열차의 구조는 유지됩니다.

남궁민수는 처음부터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앞 칸으로 가서 열차를 차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옆문을 열고 열차 밖으로 나가려 합니다. 결국 폭발로 열차가 탈선하고, 요나와 티미만이 살아남아 바깥으로 나옵니다. 그들은 열차 안의 수평선을 끝까지 따라가는 대신 그 선 자체에서 벗어납니다.

두 결말의 차이는 여기서 분명해집니다. 〈기생충〉은 수직 구조를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인물을 다시 아래로 돌려보냅니다. 〈설국열차〉는 수평 구조 전체를 파괴하고 불확실한 외부로 나갑니다. 하나는 체제가 너무 단단해 탈출을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다른 하나는 체제를 부수지 않는 한 새로운 시작도 없다고 말합니다.

두 영화가 선으로 그린 계급

두 작품이 공통으로 바라보는 문제는 가난한 사람이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느냐는 단순한 질문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공간을 소유하고 이동의 규칙을 정하느냐는 문제입니다.

〈기생충〉에서 박 사장 가족은 기택 가족보다 특별히 악해서 위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넓은 저택과 고용 관계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출입과 역할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기택 가족은 재능과 순발력이 있어도 잠시 빌린 역할 안에서만 움직입니다. 위층의 사람은 선을 정하고, 아래층의 사람은 그 선을 넘지 않으려 애써야 합니다.

〈설국열차〉에서는 윌포드가 엔진과 열차의 질서를 소유합니다. 승객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칸에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도록 교육받습니다. 앞으로 이동하는 문은 물리적으로 잠겨 있고, 이를 열기 위해서는 폭력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계급이 개인의 태도보다 시스템의 배치로 결정된다는 사실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수직선으로 계급을 표현한 〈기생충〉은 현실과 가까운 만큼 더 답답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언덕 위 저택과 반지하, 고용주와 노동자의 차이를 실제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수평선으로 계급을 표현한 〈설국열차〉는 과장된 세계를 통해 구조 전체를 한눈에 보여줍니다. 어느 칸에 태어났는지가 음식과 교육, 안전, 수명까지 결정합니다.

결국 두 영화에서 계급은 단순한 소득 차이가 아니라 이동 가능성의 차이입니다. 부자는 넓은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지만 가난한 사람은 계단을 오르거나 문을 하나 여는 데도 허락과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기생충〉의 수직선과 〈설국열차〉의 수평선은 방향만 다를 뿐, 이동을 통제하는 사람이 사회를 지배한다는 같은 결론을 향합니다.

현실적인 계급극과 거대한 혁명극 사이

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빈부 격차와 인물의 감정을 세밀하게 보고 싶다면 〈기생충〉이 더 잘 맞습니다. 반지하와 저택, 냄새와 폭우처럼 익숙한 요소가 계급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영화가 끝난 뒤에도 현실의 공간을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장르가 여러 차례 바뀌는 전개와 예측하기 어려운 긴장감도 강점입니다.

분명한 세계관과 액션, 집단적인 혁명 이야기를 선호한다면 〈설국열차〉가 더 적합합니다. 열차의 문을 열 때마다 새로운 공간이 등장하고, 전진 자체가 이야기의 동력이 됩니다. 계급 구조가 시각적으로 단순하고 강렬하기 때문에 영화가 말하려는 문제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두 작품을 함께 보면 봉준호 감독이 같은 계급 문제를 얼마나 다른 크기와 방향으로 설계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국열차〉는 사회 전체를 하나의 모형처럼 펼쳐 보이고, 〈기생충〉은 한 가족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계급이 몸과 감정에 남기는 흔적을 관찰합니다.

여러모로 한 편만 추천한다면 〈기생충〉을 고르겠습니다. 〈설국열차〉가 체제의 구조를 크고 선명하게 보여준다면, 〈기생충〉은 그 구조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밀어내고 상처받는 과정을 더 섬세하게 담습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단순한 대결로 끝내지 않고, 같은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제한된 자리를 두고 싸우게 된다는 점에서 계급의 작동 방식을 더욱 복잡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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